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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어디까지 개입하는가 — 레인디어스의 의사결정 보조 전략



플랫폼에 AI를 도입한다고 하면 흔히 "자동화"나 "대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레인디어스에서의 AI는 애초부터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로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가 정의한 AI의 역할은 명확하다.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라, 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조자다.


왜 '결정형 AI'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국제 무역과 물류 영역에서 완전 자동 의사결정은 기술적 문제 이전에 책임 구조의 붕괴를 가져온다.

  • 견적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포워딩 선택이 실패했을 때 수정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 납기 지연이 발생했을 때 AI의 판단을 되돌릴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AI는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리스크 증폭기가 된다. 그래서 레인디어스는 AI를 "결정 엔진"으로 두지 않았다.

여기에는 규제적 현실도 크게 작용한다. 국제 무역은 국가별 수출입 규제, 관세율, 인증 요건이 얽혀있다. 태국의 TISI 인증, 한국의 KC 마크, 중국의 CCC 인증 등 각 국가의 규제 기관은 "누가 이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해 명확한 책임 소재를 요구한다. AI가 자동으로 통관 서류를 작성하거나 인증 요건을 판단했을 때, 오류가 발생하면 규제 기관은 해당 결정의 책임자를 추적한다. "알고리즘이 판단했다"는 답변은 어느 나라의 관세청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신뢰 측면도 있다. 4,300개 이상의 파트너사가 연결된 B2B 플랫폼에서, AI가 견적 금액을 자동 결정하거나 공급사를 자동 선택했다면, 그 판단에 대한 불신은 곧 플랫폼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B2B 거래에서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특히 $130B 규모의 시장에서 거래 한 건의 금액이 수만 달러에 달할 때, "AI가 알아서 처리합니다"라는 메시지는 안심이 아니라 불안의 원인이 된다.


AI 개입의 기준: '판단 이전 단계'까지만

레인디어스에서 AI가 개입하는 지점은 항상 사람의 판단 이전 단계에 위치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역할만 수행한다.

  1. 정보 수집 및 정리
  2. 조건 누락 및 충돌 감지
  3. 선택지 구조화 및 비교 기준 제시

즉, AI는 "이게 정답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상황에서 이런 선택지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원칙은 기술 구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AI 모듈의 출력은 항상 제안(suggestion) 형태이며, 신뢰도 점수(confidence score)와 판단 근거(reasoning)를 함께 포함한다. 사용자는 제안을 승인, 거부, 또는 수정할 수 있고, 이 결정은 로그로 기록되어 향후 AI 모델 개선에 활용된다.

{
  "suggestion_id": "sug_20260205_a1b2c3",
  "type": "price_anomaly_alert",
  "target": "PQ-2026-TH-00312",
  "confidence": 0.87,
  "suggestion": "단가 $4.20이 최근 6개월 평균 $3.85 대비 9.1% 높음",
  "reasoning": [
    "동일 품목 최근 거래 42건 분석",
    "현재 환율(THB/USD) 반영 시 실질 단가 상승폭 11.3%",
    "해당 공급사 최근 3건 평균 대비 7.2% 상승"
  ],
  "action_options": ["accept", "reject", "modify", "request_requote"],
  "context": {
    "avg_price_6m": 3.85,
    "min_price_6m": 3.42,
    "max_price_6m": 4.10,
    "sample_size": 42
  }
}

견적 단계에서의 AI: 조건 검증과 가격 이상 감지

견적 단계에서 AI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의외로 가격 계산이 아니다.

실제 핵심은 다음과 같다.

  • 필수 조건 누락 감지 -- 수입국 인증 요건, 최소 주문 수량, 결제 조건 등
  • 비현실적인 수치 범위 경고 -- 과거 거래 데이터 기반 가격 이상치 탐지
  • 인증서 누락 알림 -- 목적국 규제에 따라 필요한 인증이 빠져있을 때 경고
  • 이전 유사 케이스 기반 참고 정보 제공

예를 들어 태국 바이어가 중국 공급사에게 견적을 요청할 때, AI는 해당 품목의 HS Code를 확인하고 태국 FDA 또는 TISI 인증이 필요한 품목인지 검사한다. 인증이 필요한데 공급사 프로필에 해당 인증이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견적 화면에 경고를 표시한다. 이때 AI는 "이 공급사를 선택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공급사에 해당 인증 보유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안내할 뿐이다.

가격 이상 감지는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반으로 동작한다. 동일 품목, 동일 경로, 유사 수량 조건의 과거 거래 데이터를 벡터 검색으로 조회하고, 현재 견적 금액이 통계적 범위를 벗어나는지 판단한다. 단순히 "비싸다/싸다"가 아니라, 환율 변동, 계절 요인, 원자재 가격 추이까지 반영한 맥락 있는 비교를 제공한다.


공급사(Vendor) 단계에서의 AI: 상품 정보 구조화

공급사 단계에서 AI는 판단 주체가 될 수 없다. 상품 정보, 생산 일정, 납기 가능성은 공급사의 책임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는 다음 역할에만 집중한다.

  • 상품 정보 구조화 -- 비정형 텍스트를 표준 필드(소재, 규격, 중량, 원산지)로 분류
  • 누락된 스펙 자동 식별 -- 거래 성사에 필요한 필수 정보가 빠져있으면 입력 요청
  • 표현 방식 통일 및 다국어 정리 -- 중국어로 입력된 상품명을 영어/태국어/한국어로 정규화

다국어 정규화가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중국 공급사가 입력한 상품 설명은 중국어로 되어 있지만, 태국 바이어는 태국어 또는 영어로 검색한다. 단순 번역이 아니라 무역 용어에 맞는 정규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규격 표현(如: 100*200*50mm)을 국제 표준 형식(100 x 200 x 50 mm)으로 변환하고, 소재명을 국제 통용 명칭으로 매핑하는 작업이다.

결과적으로 공급사는 "입력해야 할 것"과 "결정해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포워딩 견적에서의 AI: 경로 비교와 리스크 분석

포워딩 견적은 AI 자동화의 유혹이 가장 큰 영역이다. 하지만 레인디어스는 이 영역에서도 선을 지켰다.

AI는 다음을 수행한다.

  • 운송 경로 분해 -- 출발항/도착항/경유항별 구간 분리, 각 구간의 예상 소요일 산출
  • 비용 구성 요소 시각화 -- 해상운임, THC, 내륙운송, 통관비, 보험료 등 항목별 분해
  • 일정 리스크 포인트 표시 -- 항만 체증 이력, 계절별 지연 패턴, 환적항 대기 시간 데이터
  • 리스크 점수 산출 -- 과거 실적 기반으로 각 경로의 정시 도착 확률을 수치화

하지만 "어떤 포워더가 최선인가"는 AI가 결정하지 않는다. AI는 비교표를 만들고, 선택은 고객사가 한다.

비교표에는 단순히 가격과 일정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각 포워더의 해당 경로 실적(최근 6개월 정시율, 평균 지연일수, 클레임 발생 건수)이 함께 표시된다. 바이어는 가격이 10% 높더라도 정시율 98%인 포워더를 선택할 수 있고, 납기가 여유있는 경우 가장 저렴한 옵션을 택할 수도 있다. 이 판단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다.


DVRP에서의 AI: 배차 후보 생성과 용량 확인

DVRP(Dynamic Vehicle Routing Problem) 영역에서 AI는 세 가지로 한정된 역할을 수행한다.

  • 경로 후보 생성 -- 배송 목적지, 차량 용량, 시간 제약을 입력받아 복수의 경로 조합을 생성
  • 리소스 충돌 사전 감지 -- 같은 시간대에 같은 차량/창고에 중복 배정이 발생하는지 확인
  • ETA 예측과 스케줄 리스크 시각화 -- 교통 데이터, 과거 배송 이력 기반으로 도착 예상 시간 산출

배차 확정과 변경은 항상 사람이 승인한다. AI가 제안한 경로를 운영 매니저가 확인하고, 현장 상황(갑작스러운 도로 공사, 고객 요청 시간 변경, 차량 고장 등)을 반영하여 최종 결정한다.


결제/정산에서의 AI: 대사 보조와 환리스크 알림

결제와 정산 영역은 AI 개입의 경계를 가장 엄격하게 설정한 곳이다.

  • 대사(Reconciliation) 보조 -- PO 금액, 인보이스 금액, 실제 입금액 사이의 차이를 자동 감지하고 불일치 항목을 하이라이트
  • 환율 리스크 알림 -- 견적 시점 환율과 결제 시점 환율의 변동폭이 임계치를 넘으면 경고
  • 이중 청구/누락 청구 감지 -- 동일 거래에 대해 중복 청구가 발생하거나 청구 누락이 있으면 알림

정산 금액 확정, 환전 실행, 송금 승인은 전부 사람이 수행한다. AI는 "이 금액을 송금하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인보이스와 PO 사이에 $23.50의 차이가 있으며, 환율 변동에 의한 차이로 추정됩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분석을 제공할 뿐이다.


기술 구현: AI가 '보조'하는 메커니즘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기술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AI 파이프라인 전체에 제약이 설계되어 있다.

모든 AI 출력은 다음 구조를 따른다.

필드 설명 용도
suggestion AI가 생성한 제안 내용 사용자에게 표시
confidence 0.0 ~ 1.0 신뢰도 점수 사용자의 판단 기준
reasoning 판단 근거 목록 투명성 확보
action_options 사용자가 선택 가능한 액션 결정권이 사람에게 있음을 구조적으로 보장
decision_log 사용자의 최종 결정 기록 감사 추적 + AI 학습 데이터

사용자가 제안을 승인하면 decision_logaccepted가 기록된다. 거부하면 rejected와 함께 거부 사유가 기록된다. 수정하면 modified와 변경 내용이 저장된다. 이 데이터는 향후 AI 모델 재학습에 사용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확한 제안을 생성하게 된다.


UI와 AI의 관계: 전면 노출하지 않는다

중요한 설계 원칙 중 하나는 AI를 UI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AI의 개입은 대부분 다음 형태로 나타난다.

  • 작은 경고 문구 -- 견적 입력 화면 옆에 표시되는 조건 누락 알림
  • 참고용 요약 카드 -- 과거 유사 거래의 가격 범위를 보여주는 작은 패널
  • 선택지 정렬 기준 변경 -- 포워더 목록에서 리스크 점수 기반 정렬 옵션 추가

사용자는 "AI가 판단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된다. 채팅봇이나 AI 대화창 같은 인터페이스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무역 실무자에게 필요한 것은 AI와의 대화가 아니라, 작업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맥락 정보다.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지점

AI를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기술 과제였다.

모든 자동화 시스템은 조금만 더 맡기고 싶은 유혹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 판단을 AI가 대신했을 때,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AI의 개입을 과감히 차단했다.

실무적으로 가장 어려운 경계선은 "추천"과 "결정"의 구분이었다. 예를 들어 포워딩 견적에서 AI가 "이 경로가 가장 효율적입니다"라고 표시하면, 그것은 추천인가 결정인가. 사용자는 그 표시를 보고 별다른 검토 없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AI가 실질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과 다름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의 출력은 항상 복수형이다. "최적 경로"를 하나 제시하는 대신 "비용 기준 상위 3개", "일정 기준 상위 3개", "리스크 기준 상위 3개"를 각각 보여준다. 사용자가 어떤 기준을 우선시할지는 AI가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


B2B 파트너 신뢰를 쌓는 방법

이 접근 방식은 단순히 기술 철학에 그치지 않는다. B2B 파트너와의 신뢰 구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급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AI가 자동으로 자신의 견적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플랫폼과, AI가 바이어에게 비교 정보를 제공하되 최종 선택은 바이어가 하는 플랫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에서 공급사는 알고리즘에 의해 필터링되는 대상이지만, 후자에서 공급사는 자신의 강점을 바이어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참여자다.

포워더도 마찬가지다. AI가 "이 포워더는 리스크가 높다"고 라벨링하면 그것은 사실상 퇴출이다. 하지만 "이 포워더의 최근 6개월 정시율은 92%이며, 해당 경로 실적은 15건입니다"라고 데이터를 제공하면, 포워더는 자신의 실적을 투명하게 보여줄 기회를 얻는다.


장기 방향: 신뢰가 쌓이면 자동화 수준도 올라간다

현재의 "보조자" 전략이 영원히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화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일 수 있다.

첫째, AI의 신뢰도가 충분히 검증된 영역. 특정 품목, 특정 경로, 특정 파트너 조합에서 AI 제안의 수락률이 95%를 넘고, 수락된 제안에서 문제가 발생한 비율이 1% 미만이라면, 해당 조건에서는 사용자가 별도 확인 없이 자동 진행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둘째, 파트너사의 명시적 동의. "이 조건에서는 AI가 자동으로 처리해도 괜찮다"는 파트너사의 명시적 옵트인이 있어야 한다. 이 동의는 언제든 철회 가능해야 하고, 동의 범위도 세분화되어야 한다.

이 점진적 접근은 결국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신뢰가 검증될수록, 파트너가 동의할수록 플랫폼의 자동화 수준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구조를 만든다. 강제로 자동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자동화가 확장되는 방식이다.


마무리

레인디어스에서의 AI는 "결정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더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도록 판단 재료를 정리하는 기술이다.

이 전략은 느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이 커질수록 이 방식만이 확장 가능한 구조임을 확신하고 있다. 25,000건 이상의 거래에서 쌓인 데이터가 AI의 판단 품질을 높이고, 높아진 품질이 파트너의 신뢰를 얻고, 신뢰가 다시 자동화의 범위를 넓히는 선순환. 그것이 우리가 설계하고 있는 AI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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